헥토르
헥토르는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와 헤카베의 아들로 파리스와는 형제사이가 된다.
그리스어로 '지탱하는 자', '저항자'라는 뜻을 가진 그는 전쟁이 시작되면서 트로이의 총사령관으로 활약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서 헥토르는 솔직하고 용기가 뛰어났으며, 전세가 기운다 해도 절망하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는 유부녀인 헬레네를 납치한 파리스에게 분노했고, 트로이의 원로들에게도 헬레네의 남편인 메넬라오스(스파르타의 왕)에게 헬레네를 돌려줄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일단 그 일로 인하여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게 되자 그는 선두에 나서서 용감하게 싸웠다. 트로이의 땅에 제일 먼저 상륙한 그리스의 용장 프로테실라오스를 죽인 것도 바로 헥토르였다.

파리스를 꾸짖는 헥토르 트로이 전쟁이 시작된 지 9년의 세월이 흐른 때...
그리스 진영에서는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 사이에 불화가 생겨, 화가 난 아킬레우스가 전쟁에서 손을 떼고 있었다. 적의 용장 아킬레우스가 물러났다는 것을 안 헥토르는 맹공격에 나섰다.

그리스군의 위기를 우려한 파트로클로스는 친구인 아킬레우스를 설득하여, 그의 갑옷과 그가 지휘하던 미르미돈(아킬레우스의 군대)군사를 빌려 선두에 서서 싸움터로 나갔다.
그러자 파트로클로스를 아킬레우스인 줄로 착각한 트로이군은 겁을 먹고 퇴각했다. 그러나 아폴론의 격려를 받은 헥토르는 과감하게 그와 맞서 파트로클로스를 죽이고, 그가 빌려 입고 있던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빼앗았다.
소중한 친구를 잃은 아킬레우스는 그 복수를 위해 다시 전장으로 돌아오고, 헥토르는 아킬 레우스와의 대결에서 목숨을 잃는다.
죽은 헥토르의 시체는 아킬레우스에게 처참하게 유린당했다. 그러나 아폴론은 헥토르의 시체가 이러한 학대를 받으면서도 찢기거나 손상당하지 않게 하였고 모든 더러움과 모독으로부터 방어했다. 제우스도 이를 불쌍히 여겨 테티스를 불러서 아들 아킬레우스에게 헥토르의 시체를 트로이군에게 반환토록 설득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무지개의 여신 이리스를 프리아모스 왕에게 파견하여 용기를 내어 아킬레우스한테 가서 아들시체를 반환할 것을 청하게 하라고 일렀다.

프리아모스왕은 많은 보물들을 싣고 아킬레우스에게 가기로 했다. 늙은 왕은 비슷한 연배의 말몰이꾼 한명만을 데리고 가려했다. 작별인사를 하면서 왕후와 모든 친지들은 그들은 왕이 죽으러가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하여 비탄에 잠겨 있었다.
제우스는 이 노왕(老王)의 모습을 불쌍히 여겨 헤르메스를 그의 안내자로 파견했다. 헤르메스의 안내를 받아 아킬레우스에게 간 프리아모스왕은 아들의 목숨을 앗아간 그의 발밑에 몸을 던졌다. 늙은 왕은 진심으로 아들의 몸을 요구하였고, 아킬레우스는 그의 말에 감동되었다. 그는 멀리 떨어져 있는 아버지와 죽은 친구를 번갈아 생각하면서 울었다. 프리아모스의 백발을 보고 아킬레우스는 연민의 정을 금할 수 없었다.
프리아모스 왕이 헥토르의 유해와 함께 트로이로 돌아오자 트로이 시민들은 깊은 슬픔에 잠겼다. 헬레네는 모두가 다 자기를 적대시 하는 가운데 유독 헥토르만이 자기를 옹호해주었다면서 지난날을 회상하며 눈물을 흘렸다. 날이 밝자 장례준비가 시작되었다. 9일 동안 사람들은 나무를 가지고 와서 화장단을 쌓았다. 그리고 10일째에 그 위에 시체를 올려놓고 불을 당겼다. 트로이의 군중들은 모두 몰려나와 화장단을 둘러쌌다. 불이 다 타버리자 그들은 남은 불덩이에 물을 뿌려 끄고 유골을 모아 황금 항아리 속에 넣은 후 땅 속에 묻고 그 위에 돌로 무덤을 쌓았다. <일리아드>의 이야기는 헥토르의 장례식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있다. 트로이의 함락은 헥토르의 죽음으로 이미 예고되어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헥토르의 어린 아들 아스티아낙스도 복수를 두려워 한 그리스군에 의해 죽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