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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신화

ѰԽù 46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만화원작 홍은영·가나출판사)는 초등학생이면 못본 아동이 없을 정도로 출판시장을 강타한 책이다. 그러나 그 내용과 작품성에 대해선 논란이 있어왔고, 최근엔 만화원작자가 출판사를 상대로 38억원의 저작권 위반 소송을 내서 화제가 됐다. 만화스토리작가 이영미씨가 이 책의 내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글을 보내와 싣는다.

신화를 공부하는 이유는 그 방대한 미궁 속 탐험을 통해 현대를 관통하는 사상들의 뿌리를 찾고 인간과 세상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를 얻고자 함이다. 수천년 동안 만들어진 신화는 그 자체가 역사이고 철학이며 예술로서, 곧 인류문화의 원형이다.

1000만부가 넘게 팔린 것으로 알려진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현 18권)는 근래 출판가의 ‘신화’가 됐다. 이 만화가 나올 무렵 마침 서점가에 ‘신화’ 바람이 불었고, 만화는 어린 독자들에게 일본 만화 ‘디지몬’이나 ‘피카추’처럼 캐릭터화된 신들의 계보를 짜맞추는 재미로 어필했다. 부모들은 아이가 엄청난 신화를 통째로 이해하며 순식간에 교양이 쌓이는 것으로 알고 대견해했다. 출판사들도 잇달아 신화를 상품으로 만들어 팔았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런데 과연 ‘만화로…’로 비롯된 신화의 ‘천박한’ 상품화는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까. 필자는 정신 차리라고 호통을 치며 책을 빼앗고 싶을 만큼 이 책이 위험하게 보인다.

만화로만 언뜻 봐도 이 책의 컬러는 과장된 색의 난립이며, 캐릭터는 구분이 어려울 만큼 그게 그거다. ‘참 재미있고 신비로운 이야기가 있군요’식의 문어체 대사는 어색하기 짝이 없다. 난립된 에피소드는 그저 혼란스럽다. 등장하는 남자들은 하나같이 이두박근이 과장돼 있으며 여자들은 전부 구슬 같은 눈에 글래머의 몸매를 지녔다. 이들은 만나기만 하면 ‘짝짓기’를 하거나 싸움을 벌인다. 결혼의 조건이 여자는 ‘미모’요, 남자는 ‘힘’ 이다. 등장하는 남편이나 남자들은 여성에게 반말로 하대하며 여자는 존댓말로 예우한다.

책을 읽는 아이들은 여자는 그저 큰 눈에 허리가 잘록한 미녀가 최고며, 남자는 울퉁불퉁한 근육질이어야 한다는 성(性) 정체성이 알게 모르게 굳어지는 것은 아닐까. 자칫하다간 여자애가 성형을 한다고 제 눈을 칼로 찢거나 남자애가 친구에게 흉기를 휘두르는 작금의 현상을 더욱 부채질할 수 있는 문제다.

그리스 로마 신화가 인류의 고전으로 오랜 세월 읽히는 것은 거기서 서구문화가 잉태했고 인간심리에 대한 깊은 상징들이 곳곳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문학작품으로 재생산되고, 현대 심리학 용어의 대부분이 이 신화에 어원을 두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신화란 너무나 거대한 미궁이며, 그 상징과 의미를 찾는 일은 미지의 대륙을 탐험하는 것과 같다. ‘그리스 로마 신화’ 는 이 만화의 원작자인 토마스 불핀치가 간추린 것만 60권이 넘고, 등장하는 신만 2000여명이 될 정도다.

이 만화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어디서도 그러한 고전의 향기를 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신들의 사랑과 갈등 속에 묻혀있는 인문학적 의미는 온데간데없고,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기도 전에 장대한 신들의 역사를 짧은 에피소드들로 뭉개면서 상상의 여지조차 빼앗아버린다. 다른 논란의 갈래는 접어두더라도, 역시 비슷한 수준으로 판매된 이원복의 만화 ‘먼나라 이웃나라’가 가진 ‘교양적 미덕’마저 이 만화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그저 그로테스크하게 과장된 인물들만 등장한다.

더욱이 초반에 그런대로 흥미롭게 스토리를 전개하던 책은 권수가 늘어나 10권쯤 되면 ‘트로이전쟁’에만 5권 분량을 들이면서 불균형하게 이야기를 늘려나간다. 초반 그림의 집중력도 뒤로 갈수록 선이 흐트러지고 균형을 잃으며 캐릭터의 개성도 사라진다. 신화를 팬시상품으로 접근한 이 책이 지닌 그나마의 장점조차 인기를 모을수록 그 질이 떨어지고 있다.

여러번 서점에 나가보았다. 그리스 로마 신화 열풍에 힘입어 서점에 한 코너를 차지하고 있는 어린이용 신화들은 이 책보다 훨씬 조악한 솜씨로 급조되어 서점에 깔려 있었다. 그에 비한다면 이 책은 그나마 나은 편에 속했다.

1000만부나 이 책이 팔리고 갖가지 아류 만화가 서점가에 질펀하게 깔리도록 그 어떤 비평도 가하지 못한 만화출판의 평단도 이 책에 대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책의 저자와 출판사간에 만화영화 제작을 둘러싸고 저작권 소송이 불거졌다는 보도를 보면서, 출판계 일각에 대한 하나의 경고처럼 들리는 것은 필자뿐일까.

글/이영미 만화 스토리작가 klavenda@empal.com  
기사 게재 일자 2004/01/28
원본기사 : http://www.munhwa.com/culture/200401/28/20040128010121300080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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