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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적 관점에서 재조명한 신화'여성을 위한 그리스 신화'
시아출판사가 펴낸 「여성을 위한 그리스 신화」는 언뜻 보기에 최근 불고 있는 신화읽기 열풍에 편승해 나온 듯한 인상을 준다.
일본 소설가인 사에구사 가즈코가 쓰고 전문번역가인 한은미가 옮긴 이 책은 이른바 '여성적 관점에서 재조명하는 그리스 신화'를 지향한다.
이 책이 여느 그리스 신화 관련 서적들과 차별화되는 가장 큰 특징은 그리스 신화에 무의식적으로 내재돼 있는 남성중심적 사고를 걷어내기 위해 무진장 노력하고있는 점이다.
'여성적' 관점에서 볼 때 저자가 주장하는 이론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주신(主神)으로 알려진 제우스가 애초부터 대지를 지배한 신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일부 신화학자들의 연구에 근거해 태초에 대지를 지배한 신들은 제우스가 아니라 '그녀들'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직 무언가를 기록할 수 있는 아무런 수단도 없던 시대의 '그녀들'은이름도 없고, 무엇을 관장했는지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불이익을 당해야만 했다.
그리고 남성 신화기록자들에 의해 마침내 제우스가 주신의 위치를 확고히 차지하게 되자 제우스를 중심으로 한 올림포스 12신 신화에서 '그녀들'의 지위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격하되는 수난을 겪어야 했다.
즉, 점차 강화되는 남성지배적 사회구조의 영향을 받아 그리스 신화 전체가 남성 중심으로 새롭게 짜였다는 얘기다.
마찬가지 이유로 원래 올림포스 12신 중에는 '부엌'을 관장하는 여성신 헤스티아가 포함돼 있었으나 나중에 디오니소스로 대체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그리스 신화의 성립과 그 과정에서의 여성지위 저하와의 상관관계에 대한 예리한 시각을 바탕으로 그리스 신화의 언저리를 구성하는 배경적 설명을 간과하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각 신의 특징을 알기 쉽게 설명해나간다.
또 일반적으로 알려진 신화의 내용들이 상당히 왜곡됐음을 증명하는 한편 이에대한 재해석을 통해 그리스 신화와 여성에 관한 감춰진 면모를 서술한다.
풍부한 도판과 읽기 편한 활자체를 십분활용한 미려한 편집이 눈길을 끈다. 224쪽. 1만2천원.
[연합뉴스]
등록 일자 : 2002/03/08(금) 1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