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신화열풍이 여전하다. 웬만하면 그칠만도 한데 이때껏 기세가 등등하다 . 그 태풍의 눈은 단연 이윤기다. 그이가 없었다면, 신화열풍의 도화선에 불이 붙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최근에 나는 이윤기가 출연한 TV 독서프 로그램에 패널로 나간 적이 있다. 연락을 받고 여러차례 고사를 했다가 그만 출연하고 말았다.
굳이 나가지 않으려 한 것은, ‘급’이 다르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윤 기는 25년 전부터 신화의 가치와 그 중요성을 말해 왔고, 대중적인 글쓰 기 이전에 학술적 가치가 높은 신화관련서를 여럿 번역한 이력이 있다.
대학에 있는 사람들이 들으면 불쾌한 반응을 보일지 모르지만, 내가 보 기에 이윤기는 소설가이기 전에 신화학자다. 그런데 고작 신화책을 즐겨 읽어온 것에 불과한 나 같은 사람이 어찌 고명한 신화학자와 ‘맞짱’을 뜰 수 있겠는가. 역시 이윤기였다. 녹화현장에서 만나본 이윤기는 탁월한 이야기꾼의 면 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나중에는 흥에 겨워 노래까지 부르지 않던가.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신화 2’(웅진닷컴)는 신화에 나타난 사랑 이야 기를 중심으로 다룬 책이다. 이 책의 주제 가운데 몇 편은 동성애(휘아 킨토스)나 근친상간(오이디푸스) 따위를 다루고 있어 학생들이 읽는 것 을 염려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한 신화학자의 대답은 사회적 통념 안에 가둬서는 새로운 세대가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신화는 문화구성체라 표현할 수 있다. 여러 요소들이 혼재해 있는 가운 데 오늘은 그 어느 것이 지배적인 형태로 자리잡은 것일 뿐이다. 어제는 다른 것이, 내일은 또 다른 것이 우리 사회의 윤리로 등장했거나, 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신화읽기는 나와 다른 것을 타자라 일컫고 차별 하는 습속을 극복하는 계기가 된다.
신화란 지금 이곳에서 통용되는 상식의 선과 상상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며, 거기에는 다름을 인정하는 관용의 정신이 스며 있는 것이다. 왜 신화를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으로 이만한 것은 없으리라.
이권우/도서평론가
[내외경제] 편집: 2002-09-06 14:12